중환자실에서 호흡기내과 의사로 살다[박소연 이화여대 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집중 치료실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순간 질병과 치열하게 싸우는 환자와 의사, 간호사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현대 의학에서 취급할 수 있는 기술이 집약된 최첨단의 기구가 나란히 있어 분·초를 다투는 환자의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감에 차 있다.

집중 치료실에는 하루 1,2회 20~30분만 면회가 허용되다 보니 가족의 안타까움도 환자의 심한 외로움도 “치료”때문에 견디어야 한다.

집중 치료실에는 폐렴을 비롯한 여러 원인에서 스스로 호흡이 힘들고 입실하다 환자가 많다.

이렇게 호흡이 못하는 환자들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집중 치료실의 호흡기 내과 의사로서.집중 치료실에서 호흡기 내과는 시각을 다투는 환자를 돌봐야 할 뿐 아니라 몇주 동안 환자가 좋아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아주 조금의 변화에 기뻐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기다려야 하는 진료과이다.

숨을 쉴 수 없이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는 이산화 탄소가 증가하면 인공 삽관다는 가는 튜브를 통해서 인공 호흡기와 연결하고 숨을 불어넣고 하루를 또 하루 견디며 살아갈 희망을 만든다.

그리고 그 희망이 완성하는 순간(마침내 인공 삽관한 튜브를 빼고 환자가 스스로 호흡을 하는 그 순간)중환자실에서 호흡기 내과 의사의 임무는 어느 정도 끝난다.

이때가 드디어 다시 한번 인생의 순간이 찾아왔음을 느끼는 환자에게도 가족에도 의료진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인공 삽관한 환자가 이야기를 하고 입으로 물을 마시고 그것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집으로 돌아가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모든 것이 정말 대단한 인생의 경이적인 경험에 틀림 없다.

나는 지금부터 14년 전 겨울 전공의 2년째 때 집중 치료실의 수련을 하면서 결심했다.

“아, 이런 경험을 평생 있다면 의사로서 너무 행복해라”라고. 그러나 모든 환자가 이처럼 인공 호흡기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는 것은 없다.

단 하루 이틀도 있을 수 없는 이런 집중 치료실에 보통 보름 이상 길게는 한두달 간 체류하는(인간의 삶에 대한 열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 환자를 배웅하는 학부모의 몸부림,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요양 병원과 집중 치료실을 오갈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의)환자가 있다.

이분들의 상당수가 스스로 호흡할 수 없는 기계 호흡에 의존해야 하루 하루, 아니 한분을 견딜 수 있는 만성 호흡 부전 환자들이다.

이 환자들은 분들은 숨이 막힐 고통을 참는 분들이라서 대부분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한편 의식이 명료한 때문에 이분들을 지켜보는 동안 의료진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다.

“하루 종일 그 침대에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얼마나 외로울까.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울까”라는 생각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걱정하는 나를 위로하는 환자들 또한 그 같은 만성 호흡 부전 환자들이다.

이런 만성 호흡 부전 환자는 기관 절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말을 잃고 주로 필기를 하는데,”오늘은 왜 이렇게 힘들게 보이니 손이 찬데. 저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과 손바닥에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글씨를 쓸 때 우르르 쏟아지는 눈물을 참는 것은 정말 힘들다.

스스로 숨을 쉬고, 두 발로 서서 걸어 푸른 하늘을 언제든지 바라볼 수 있으며, 집에 와서 숙면할 수 있도록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과 그럴 수 없는 의사로서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제4차 산업 혁명의 도래라고, AI의 발전이니 하는 눈부신 미래가 벌어진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집중 치료실 한쪽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에게 주어지는 미래는 14년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사람은 꿈을 가진 존재이다.

지금부터 저의 칼은 생명과 동시에 그 꿈을 구할 것이다.

”1890년 캐나다에서 태어났고 자신이 폐 결핵을 극복하고 스페인 내전과 중일 전쟁에서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한 Henry Norman Bethune의 말이다.

집중 치료실의 호흡기 내과 의사는 Henry Norman Bethune처럼 칼을 갖지 못했지만 환자의 호흡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니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고 청진기를 숨 대신에 쉴 인공 호흡기라는 기계를 환자 때문에 쓸 수 있다.

청진기와 인공 호흡기로 중환자실 환자에게 연명하는 것 외에도 어떤 꿈을 꾸게 할 수 있을까.함께 하는 동료가 없어도 반복되는 당직과 36시간의 지속 근무에도 또 심야 12시를 지나 아주 힘든 일상이 반복되면서 여기서 세워야 할지를 고민할 때가 있는데 오늘도 내 손을 잡아 주고 뼈만 여위 담은 그분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저는 집중 치료실로 호흡기 내과 의사로서의 삶을 계속할 수 없을 것 같다.

중환자실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순간 질병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환자와 의사, 간호사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현대의학에서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집약된 최첨단 기구들이 즐비하고 분·초를 다투며 환자의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늘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중환자실에서는 하루에 한두 번 20~30분만 면회가 허용되기 때문에 가족의 안타까움도, 환자의 극심한 외로움도 ‘치료’를 위해 감내해야 한다.

중환자실에는 폐렴을 비롯한 여러 원인으로 스스로 호흡이 어려워져 입실하는 환자가 많다.

이렇게 숨을 쉴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해 나는 존재한다.

중환자실 호흡기 내과 의사로서.중환자실에서 호흡기내과는 시간을 다투는 환자를 돌봐야 할 뿐만 아니라 몇 주에 걸쳐 환자가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아주 조금의 변화에 기뻐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혼신의 힘을 다해 기다려야 하는 진료과다.

숨을 쉴 수 없어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인공삽관이라는 가는 튜브를 통해 인공호흡기와 연결해 숨을 불어 넣어 하루를 또 하루 견디고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만든다.

그리고 그 희망이 완성되는 순간(드디어 인공삽관을 한 튜브를 빼고 환자가 스스로 호흡을 하는 그 순간)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내과 의사의 임무는 어느 정도 끝나게 된다.

이때가 드디어 또 한 번 인생의 순간이 왔음을 느끼는 환자에게도, 가족에게도, 의료진에게도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인공삽관을 한 환자가 말을 하고 입으로 물을 마시고, 게다가 차근차근 내딛고, 집에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모든 것이 정말 대단한 인생의 경이로운 경험임에 틀림없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겨울 전공의 2년 차 때 중환자실 수련을 하면서 결심했다.

‘아, 이런 경험을 평생 할 수 있으면 의사로서 너무 행복하겠다’고. 하지만 모든 환자가 이처럼 인공호흡기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니다.

단 하루 이틀도 있을 수 없는 이런 중환자실에 보통 보름 이상 길게는 한두 달간 머무는(인간의 삶에 대한 열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환자를 배웅하는 보호자들의 몸부림,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요양병원과 중환자실을 왔다갔다하는 안타까운 운명의) 환자들이 있다.

이분들 대부분이 스스로 숨쉴 수 없는 기계호흡에 의존해야 하루하루, 아니 1분을 버틸 수 있는 만성 호흡부전 환자들이다.

이 환자들은 분들은 숨막히는 고통을 참는 분들이기 때문에 웬만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의식이 너무 명료하다 보니 이분들을 지켜보는 동안 의료진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다.

하루 종일 저 침대에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섭섭할까. ‘죽음이 다가오는 게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걱정하는 나를 위로해주는 환자들 또한 그런 만성 호흡부전 환자들이다.

이런 만성 호흡부전 환자들은 기관절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잃고 주로 필답을 하는데 오늘 왜 이렇게 힘들어 보이냐, 손이 시리구나. 나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손바닥에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글씨를 쓸 때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란 정말 힘들다.

스스로 숨을 쉬고, 두 발로 서서 걸으며 푸른 하늘을 언제든지 바라볼 수 있고, 집에 돌아와 숙면을 취할 수 있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과 그럴 수 없는 의사로서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니 AI의 발전이니 하는 눈부신 미래가 펼쳐진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환자실 한쪽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에게 주어지는 미래는 14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란 꿈을 가진 존재다.

이제 내 칼은 생명과 동시에 그 꿈을 구할 것이다.

” 1890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스스로 폐결핵을 극복하고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에서 헌신적인 의료활동을 한 헨리 노먼 베순의 말이다.

중환자실 호흡기내과 의사는 헨리 노먼 베순처럼 칼을 들지는 못했지만 환자의 호흡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니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청진기를 숨 대신 쉴 수 있는 인공호흡기라는 기계를 환자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청진기와 인공호흡기로 중환자실 환자에게 생명을 이어주는 것 외에도 어떤 꿈을 꾸게 할 수 있을까.함께할 동료가 없어도 반복되는 당직과 36시간 지속근무에도 또 자정이 넘는 너무 힘든 일상이 반복되면서 여기서 멈춰야 할지 고민할 때가 있는데 오늘도 내 손을 잡아주는 뼈만 앙상한 그분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나는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내과 의사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